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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의 삶과 창업에 관하여기타 2022. 9. 18. 07:16
애초에 필자가 개발자를 시작한 이유가 창업을 위해서였다
나중에 창업했을 때 개발자가 되는 건데 "이거 안 되는데요?" 이 꼴을 보기가 싫었다물론 좋은 개발자가 있으면 좋겠지만 항상 그럴 순 없을 테니까
또한 되지도 않는 거 막무가내로 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창업은 항상 IT분야로 고정되어 생각했다.
고깃집, 옷가게 이런 자영업들은 글로벌로 나가기 비교적 어려우니까 IT업종이 비교적 가능성 있으니까
뭔가 뭔가 세계적으로 대단한 인물이 되고 싶었다
남들 위에 서고 싶었다
항상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
남들도 최소한 나의 반 정도는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주 위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들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다 딱 남들만큼
의문이 가득했다 어릴 때 읽었던 모든 책들은 영웅들의 이야기인데 왜 그냥 병졸 27로 살아가고 싶어 하지?
한번 도전해볼 수 있지 않나? 사나이라면?
엄마는 어릴 때 항상 내게 말했다 넌 왜 이렇게 애가 욕심이 없니?
엄마는 날 낳았지만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알고 있었다 그까짓 쪼그만 건 필요 없기 때문이었단 것을
동생이 욕심이 많다고 했지만 동생이 손에 쥐려 하는 것은 겨우 한 줌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도 모르겠다.
창업하겠다고 나서다가 실패했으니까.
그렇다 나는 실패한 것이다
BMW 520d 한대 가격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나 너무 억울해
사실 억울할 것도 없다
내 선택들은 잘못된 것들 투성이었으니
필자는 아버지가 건축 쪽 사업을 하시기에 건축 관련 전문대를 졸업하고(할 말이 많지만..) 졸업하기 직전 방에 대자로 2주간 누워 고민했다 건축 쪽은 죽어도 하기 싫고 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이게 스물넷 12월이었고 중점적으로 생각한 것은 첫째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어떤 직업이든 안 해봤으니까) 두 번째 내가 좋아하는 것 세 번째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창업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글로벌로 나갈 수 있어야 했다) 세 가지의 교집합으로 의류 쪽으로 결론을 내린다
당시 난 동네서 옷 좀 입는다고 방구좀 뀌고 있었고 좋아하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친구들이 조언을 구한다 아무튼 의류업에 종사를 해야겠는데 동네 로드샵은 아닌 거 같고 브랜드를 만들려면 생산 쪽부터 알아야 한다고 생각 동대문 도매시장으로 생각이 정리된다
그 길로 아빠에게 "아빠 나 결혼할 때 돈 달라고 안 할 테니까 지금 700만 원만 줘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일할 거고 500은 원룸 보증금 200은 첫 달 생활비 및 비상금이야"라고 말했고 아빠는 당황하며 2주만 생각해보게 기다려라고 말씀하시고는 며칠 안 가 주셨다
그 사이 재밌는 일이 있는데 운전면허를 따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최종 시험에 잘 응시하고 합격이 확실시된 상황
시동 끄고 내리면 되는데 뒷자리에 앉아 있던 다음 응시생이 시동도 끄기 전 내리려고 하였는데 감독관이(나이가 꽤 있었다) 지금 내리면 탈락처리된다고 뒷자리의 다음 응시생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채점하던 태블릿 PC를 켜던 중 전원 버튼을 너무 오래 눌러 꺼지게 된 것이다 세상에.... 난 합격했지만 합격한 데이터가 누락돼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미안하다며 어찌어찌 해결해 보려 했지만 결국 다시 시험에 응시해야 했다 짜증이 한가득 낫지만 결국 첫 주행보다 더 나은 점수를 받으며 합격하긴 했다
그 길로 즉시 서울로 올라갔다 아직도 기억한다 1월 15일 성북동 작은 원룸에 자리 잡게 됐다
이미 동대문 도매시장에 일하기로 결정하고 다닐 직장도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만 뭐가 어떻게 꼬였는지 한 명 혹은 두명만 있어도 되는 매장에 세명이 있게 되었고 난 다른 매장을 알아봐야 했다
그렇게 여성복 청바지 매장에 일하게 되었는데 이 매장이 독특한 게 보통 여성복 매장은 여자들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전부 남자들 뿐이었고 정말 재미있는 형들 뿐이었다 사입자(쇼핑몰 혹은 로드샵 사장이 매일 도매시장에 오기 어렵기에 물건을 대신 사서 보내주는 직업)들은 대부분 남자들만 있는 매장은 물건만 받고 가기 일쑤지만 우리 매장은 오래 눌러앉아 수다 떨기를 좋아했다 형들이 진짜 재미있었으니까 개그맨 스카우트 재의도 받았다고 했다 약간 이수근 스타일의 개그였는데 출근하면서 어제 들었던 농담 때문에 피식피식 웃으면서 출근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난 남성복이 하고 싶었고 1년 정도 일하다가 남성복 매장으로 옮기게 된다 당시에 난 내 매장을 차리고 그걸 기반으로 브랜드 사업이 하고 싶었기에 주변 사장님들에게 항상 질문이 많았다 이건 원가가 얼마에요? 어떻게 만들어요? 다른 직원들도 다들 자기 매장을 차리고 싶어 일하고 있는것 일텐데 그들은 물어보는 경우가 잘없엇다 왜그런진 잘 모르겟다 만약 개발쪽으로 빠지지지 않고 계속 동대문에 있엇다면 아마 지금쯤 브랜드 하나 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남성복 매장에서도 1년정도 잘 일하다가 어느 날 티비를 보는데 4차 산업 혁명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주의 깊게 본 방송 이후 이거다 싶었다 당시 설명했던 것이 인공지능, 로봇, 3D 프린터, AR/VR이었는데 그 당시 짧은 식견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은 대기업이 해야 할 것이고 3D 프린터는 제조업이니까 앱, 혹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AR/VR 쪽으로 가야겠다라고 생각을 굳히게 된다
개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 지도에 컴퓨터학원을 검색 무작정 찾아가게 된다
제일 가까운 게 종로에 있었으므로 그곳으로 갔는데 요즘엔 그렇게 안 한다 국비교육으로 이렇게 저렇게 한다고 알려주더라 하지만 그렇게 하면 돈을 받고 다니지만 (그 당시 월에 30만 원) 그 돈이면 집 월세도 낼 수 없었다 거기다가 아침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풀타임으로 있게 되니 다른 일도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사나이는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법
시장에서 보고 들은 게 있으니 낮에는 학원에 다니고 밤에는 쇼핑몰을 창업하여 쇼핑몰 일을 하기 시작한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쉬는 날은 없었고 어쩌다가 기절해서 늦게 일어나 버리면 그게 쉬는 날이었다 평일엔 학원 다니고 시장에서 사입하고 배송 주말에 옷 촬영하고 업로드하고 바빴으니까
학원에서 듣는 수업도 제대로 못 따라갔다
항상 잠이 부족하니 지각하기 일쑤였고 수료 보름 남짓 남은 시점 난 단 하루라도 지각하면 최소 기준치인 80% 출석 일수에 부합하지 못해 탈락할 위기에 놓여있었다
당시 강사님이 정말 좋으신 분이었는데 내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말씀드리니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셨고 실제로 해내고 말았다.
내 기억에 9명 정도로 시작했는데 3명 정도 중도 하차하고 난 살아남았다
역시 사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도 남은 여섯 명 중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넷 정도 된다
어쨌든 어찌어찌 수료를 마치고 다른 포스팅에 적어 놓았듯 세 개의 직장을 거치게 되는데(첫 직장에서 본업에 집중하기 위해 쇼핑몰은 접었다 직장과 병행하긴 너무 버겁기에)
세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친구와 고향인 대전으로 놀러 가던 차 안에서 문득 생각이 떠오르는데 당시 NFT가 굉장한 열풍이었다 NFT가 열풍인데 만드는 게 쉽다고는 하지만 그건 개발자 이야기 아닌가? 만들어주는 사업을 하면 어떨까 에 초점을 두었고 알아본 결과 초등학생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그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첫 번째로는 NFT가 현재 실물가치가 전혀 없으니 실물과의 연동이었다
NFC 태그를 이용해서 연동을 할 생각이었고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NFT가 망하더라도 실물은 가치가 그대로 있으니 투자자 입장에서도 손해 볼 일도 없어 보였다
그 길로 창업에 나서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고 부모님에게 사업계획서까지 제출하며 돈을 끌어 왔다
개발을 혼자 할 수 없으니 앞서 서술했던 국비 학원에 같이 배웠던 열 살 많던 형이 있는데 그 형이 마침 쉬고 있었다
그 형 아니 그 새끼를 설명하자면 원래 web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기초가 부족한 거 같다며 국비교육을 다시 들었던 인물이다 현업에 있다 보니 기초적인 개발은 원활히 잘했고 그게 내겐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인상이었다 가끔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전 직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해 대우를 너무 못 받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이는 사실이 아니고 적절한 대우였다) 아무튼 그 형이 원하는 요구조건(연봉, 유연 출퇴근 적은 근무시간)을 맞춰주고 일하기로 했는데 월요일에 출근하기로 결정하였고 월요일 출근 전 커피를 두 잔 사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배 아프고 머리 아파서 화요일부터 나오겠다 하길래 알겠다고 몸조리 잘하라고 하며 화요일에 보니 열 시 출근을 열한 시에 하더라 이후 앞으로의 방향과 해야 할 일등 이야기하고 회사 메일 노션 등 초대를 받으라고 하니 오늘은 노트북을 킬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 왜 들고 온 건데.... 그리고 다섯 시 퇴근
수요일 열한 시에 전화해서 머리 아프고 배 아프니 다음 주부터 나오겠된다..... 그러세요......
나도 같이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는데 다음 주에도 또 그냥 놀고 잇다가 집에 가려고 하길래 회사 메일이랑 노션 했느냐 물으니 안했단다 지금하고 가라고 하니 내가 링크를 잘못줘서 회사메일 가입이 잘 안됐다 이를 두고 거봐라 안되지 않냐 고하더라....... 하... "안되는 거 지금 해서 알았으니까 고쳐서 해야 할 거 아니냐 내일 되면 안 되는 게 되는 걸로 바뀌냐" 고 묻자 암말 못하고 그냥 하더라.. 다음날 또 느지막이 출근해서 다른 개발자 구할 때까지만 일한다고 하길래 그냥 꺼지라고 했다
일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고 회사 메일 가입한 거뿐이니 돈은 못주고 그냥 그동안 점심 사준 걸로 퉁치자고 하고 보냈다
그 이후로 그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게 호되게 당한 후 고정비용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장의 수입이 없으니 최대한 아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겠다 개발은 내가 하던 외주 주고 디자인 또한 외주가 필요했다
마침 아는 디자이너가 있어서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 디자이너가 소개해준 친구들이 일을 잘할 거 같아서 외주계약을 파기하려 하는데 아니 이럴 수가? 외주작업 요청사항에 대해 한 것도 없으면서 취소 수수료로 총 외주금액의 절반을 요구하는것이 아닌가..? 다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결국 그 디자이너는 설전 끝에 거의 3~40%의 금액을 가져갔다 한것도 없는데!
이미 착수금 명목으로 절반의 돈을 입금했기 때문이었다
사업은 고통의 연속이었고 보여줄게 부족하니 어찌어찌 연결된 유명 작가와도 트러블이 있었다
유명 타투이스트도 너무 좋다고 참여한다고 했다가 일방적으로 그냥 안 하겠다 통보하기도 했다
사업계획서 수정과 수정의 연속이었고 정말 하루에 12시간씩 일했다
투자 미팅도 몇 건 했지만 잘되지 않았고 사업의 방향은 DAO(탈중앙화 자율조직으로써 내 딴에는 미니 주식회사를 만들고 싶었다)를 결합하여 내딴에는 꽤 봐줄 만한 사업계획서까지 완성이 되었다.
방향성은 맞아 보였고 이대로 가면 될 것만 같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돈은 다 떨어진 상태였고 더 빚을 질 수는 있지만 지금 이상의 빚은 내가 재기하기 어려웠다 사업이 실패하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고 난 선택을 해야만 했다.
결국 직장을 들어가는 선택을 하고 지금 그를 위해 이 블로그를 쓰고 있다.
실패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두 가지는 단계적으로 매출을 일으킬 창업 아이템이어야 했다 라는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로는 같이 일할 믿을 만한 팀원이 없었다는 것이다.
언제든 난 다시 도전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내가 최고라는 사실은 아직도 믿고 있으니까.
다만 앞서 서술한 두 가지 문제를 꼭 해결한 후에 다시 도전할 것이다.
때가 된다면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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